에이즈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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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4/7/17(토)
필독]절망하는 포비아와 HIV 양성인에게 ..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절망하는 당신에게

저는 당신이 우리 모임의 글을 충분히 섭렵했다는 가정 아래 이 글을 씁니다. 섭렵, 그렇습니다.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리는 당신은 에이즈 정보를 채집하고 수렵했습니다. 이제 그 열매와 고기를 먹기 위해 이 자리에 앉아 있습니다. 혹시, 하이에나같이 초대받지 않은 손님이 당신의 등 뒤를 기웃거릴 거라고 예상치 마십시오. 지금은 단지 마음이 심란할 뿐이니까요.

우리 모임의 글을 읽은 분들은 하나같이 제가 냉정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렇게 봐도 틀린 건 아닙니다. 에이즈 재평가 모임을 운영하고 책임지는 입장에서 저는 그 누구보다 냉철해야 될 위치에 있기 때문입니다. 보시면 알겠지만, 에이즈에 관한 모든 논의는 전쟁터와 다를 바 없습니다. 과학적 논의는 적당히 양보하고, 사람 좋게 타협할 수 있는 게 아닙니다. 사람의 생명이 걸린 문제이며, 그 목숨은 하늘과 땅의 무게를 합친 것보다 무거운 것입니다. 그래서 이 모임은 확실히 봉사하는 모임이기도 합니다. 무조건!

이 글을 쓰는 저는 단 한 번도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린 적이 없습니다. HIV 양성인도 아니지요. 그런데 어째서, 왜 이 모임을 만들고 에이즈 재평가 운동을 하느냐고 되묻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사실, 지난 3년간 천 번 이상 같은 질문을 받았습니다. 즉, 3년 내내 에이즈 공포증자나 HIV 양성인을 만나왔던 것입니다. 단, 하루도 빠짐없이.

이 땅에서 에이즈 상담을 하는 사람 중 진정으로 에이즈 공포가 뭔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될까! 저는 이런 생각을 자주 하는 편입니다. 왜냐하면, 제가 이 운동을 하게 된 것은 이런 빌어먹을 공포로 인해 지금껏 많은 사람들이 스스로 자살했던 수많은 사례를 신문과 잡지 등 보도매체를 통해 익숙하게 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진정으로 공포가 뭔지 아는 사람은 적어도 ‘양심’은 있는 사람일 거라고 생각합니다.

저도 이와 같은 양심적인 사람에 지나지 않습니다. 폐지를 잔뜩 실은 리어카를 보면 뒤에서 밀어주고, 한 밤 중에 공원을 서성이는 노인이 있다면 다가가서 가족과의 만남을 주선하던 그저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더 정확하게 말한다면 한때 노동자의 권리와 민중의 생존권을 쟁취하기 위해 한 몸 바쳐 투신했던 노동운동가였으며, 고생만 하다가 질병에 쓰러져 고통 속에 죽어가던 민중의 삶에 조금이라도 희망을 주고자 대체의학을 공부하던 만학도였습니다.

대체의학을 공부하던 중 유난히 암과 에이즈에 관심이 쏠리더군요. 당연합니다. 희대의 질병이라니까, 이게 도대체 뭘까하고 흥미가 느껴진 겁니다. 공부를 하다가 또 하다가 제가 느낀 것은 ‘뭐, 이런 말도 안 되는 이론이 있을까!’였습니다. 암이나 에이즈나!

그래서 저는 암 환자 가족과 함께 한국 최초의 의료 시민단체인 ‘암 환자 가족을 사랑하는 시민연대’를 조직했고 거기서는 사무국장을 역임했습니다. 곧 제가 쓴 책도 출판될 것입니다. [암, 그래도 희망은 있다]는!

에이즈의 모순은 암보다 더 일찍 알았습니다. 지금으로부터 3년 전 저는 인터넷의 에이즈 정보를 모두 정리하여 천천히 읽어보았습니다. 아주 놀라웠습니다. 면역학의 기초부터 송두리째 뒤흔드는 야리꾸리한 논리에서 과학적 근거가 전혀 제시되지 않는 가정법, 경제학이나 역사학에서 주장하는 것과는 전혀 다른 주장들 등등. 결국 도서관에 틀어 박혀 한달 내내 에이즈에 관한 레퍼런스(출처)를 확인하는 과정을 밟은 뒤 한국에 보도된 모든 에이즈 관련 글을 섭렵하기에 이르렀습니다.

정말 많이 고민했습니다. 제가 헛생각을 하는 게 아닌가에 대해! 그러나 아무리 뒤집어도 결론은 하나였습니다. 에이즈는 없다! 마침내 이 문제를 공론화하겠다고 결심한 그날 밤, 저는 처음으로 친구에게 에이즈에 관한 제 고민을 털어 놓았습니다. 이렇게 말하더군요. “네 생각이 맞는 것 같다.”

그 뒤 시간이 좀 지나서 외국의 반체제 에이즈 단체를 알게 되었고, 이때 저는 정말 기뻤습니다. 월터 길버트 박사나 케리 뮬리스 박사 같은 사람이 에이즈는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니! 이들은 모두 노벨상을 받은 과학자입니다. 또 산더미 같이 쌓인, 에이즈가 없다는 과학적 증거와 출처를 발견했습니다.

그러나 이러한 기쁨이 저를 당신이 있는 이 자리에 오게 한 것은 아닙니다. 분노가 앞섰고, 괴로움이 뒤따랐던 것입니다. 허구적인 이데올로기로 인해 절망하고 끝내 자살에 이르게 하는 현실을 도저히, 절대로, 결코 용납할 수 없었습니다. 대안이 필요하며, 그 일을 해야 한다고 확신했기에 이 모임을 만들기에 이르렀습니다.

어떤 사람은 제가 이 고생을 하면서도 돈 한 푼 만져보지 못하는데, 무슨 낙으로 하냐고 묻기도 합니다. 낙이 없다는 그 말은 정말 맞습니다. 하지만 돈을 벌려고 했다면, 명예를 얻고자 했다면, 누가 알아주기를 원했다면 이 일을 못했을 것입니다. 저는 당신이 에이즈 공포증에서 벗어나는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합니다. 더 이상 이 땅에 에이즈 공포로 인해 목을 매는 사람이 없다는 것만으로도 제 할 일은 왠만큼 하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에 ...

제 소개를 길게 한 까닭은 우리 모임의 운영자인 제가 누군지 알고 싶어하는 사람이 의외로 많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대화의 주제가 사랑이기에 우리는 서로를 알 필요가 있기 때문입니다. 오해가 없기를 바랍니다. 사실 저는 당신과 다를 게 전혀 없는 사람입니다. 냉정하다고 느껴진다면 그건 제가 에이즈 전쟁의 한 가운데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글로서만 나타나는 개성일 뿐입니다. 쑥스럽지만, 저는 볼키라는 이름의 고양이를 기르고 있으며, 슬프면 눈물이 마를 줄 모르는 감성적이고 수더분한 사람입니다. 우리 모임의 회원 중 한 명은 나를 보면 항상 놀리지요. “넌 아무 생각이 없고 멍청해보여.”

하지만

당신은 지금 사랑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어린 배추 싹이 돋은 것처럼 해맣고 이쁜 여자친구이거나 남자친구, 기가 막히게 사랑스러운 애인이거나 또는 아내, 남편 그리고 망초꽃처럼 피어나는 자식이기도 합니다.

사랑이란 상대가 누구이든 간에 단 하루에도 긴 역사가 있는 거룩함이자 꿈일 것입니다. 너무나 친숙하기에 내가 얼어죽어도 넉넉히 안아주고 싶은 마음이 간절히 드는 게 솔직한 심정이고요. 그래서 사랑을 ‘지독하다, 애처롭다’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또 당신은 이 두 가지 사랑을 온 몸에 받아 안고 있는 사람이 분명할 겁니다. 그렇지 않으면 가슴 아파하지도 않을 것이기에.

제가 들어 온 사랑의 표현 중 가장 간절했던 것은 “내 창자를 빼서라도 주고 싶다.”였습니다. 당신은 뼈저리게 느끼고 있을 겁니다. 삶이 무섭다고 여기고 있으며, 죽음이 불가피하다고 믿는데 이것보다 더 리얼리틱한 연민이 어디 있겠습니까. 그래요. 확실히 연민입니다. 자신에 대한 비극적인 설움이고, 깜깜한 몸뚱이고, 밤새 술을 마시다가 먼 동이 찢어지면 전쟁터에 나서야하는 병사의 오장육부와 같을 것입니다.

내가 에이즈에 걸렸는데!!!
곧 피를 뿜으며 쓰러질 괴물인데!!!

제가 아는 사연 중에는 아주 숨막히게 가슴 미어지는 것이 한 두 개가 아닙니다. 죽기로 작정하고 난 뒤 생명보험에 들어 가족의 생계비를 준비하면서도 자식의 교육을 걱정해서 카드를 끍어 백과사전 전집을 구매했던 사람도 있습니다. 그는 자살 직전에 운전대에 머리를 박고 한참동안 울었다고 합니다. (다행히 다시 살아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또 어떤 사람은 새벽에 전화하여 처절하게 웃고, 울며 차라리 죽고 싶다면서 부들부들 떨리는 몸부림을 치기도 했습니다. 이렇게, 저렇게 죽고 싶다는 말을 제가 들었던 것만 해도 아마 수천페이지가 될 지도 모릅니다. 저는 이해합니다. 격한 감정 속에서는 자기파괴적인 행동을 통해 다시 태어날 수도 있으며, 어쩔 수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운명의 힘이 자신을 뒤흔들 때 질풍노도 속에 표류할 수밖에 없음을 지금 이 순간도 자기 파멸 속에 가슴 아파하는 당신만큼 잘 이해합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깨어 있는 사람만이 새벽을 보듯이, 사랑을 하는 사람만이 번뇌를 느낍니다. 자신을 사랑하든, 그게 아니든 당신은 에이즈 공포증에서 구체적인 현실과 실존을 만나고 있습니다. 듣기도 싫겠지요. 에이즈라는 단어가. 주위 사람들이 신문의 가십거리에서 에이즈라는 단어를 들먹일 때마다 당신은 묵묵히 입을 다물고 있으면서도 살덩이가 찢어지는 걸 체험하겠지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에이즈 공포증자는 자신이 에이즈에 걸린 사람이라고 믿습니다. 그 혹은 그녀의 빛나는 눈동자 속에 반짝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는 것처럼 확실히 에이즈가 존재하며 그렇기에 증상을 보건대 에이즈에 걸린 게 틀림없다고 거듭 거듭 되뇌입니다. 시간이 지날 수록 상황은 악화되어갑니다. 만일, HIV 검사를 받았다면 결과를 기다리는 시간이, 또 그 시간을 1분 1초 따로 떼어보면 지옥과 지옥의 불구덩이를 지나는 억만겁의 시간만큼이나 길어보입니다.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을 약속했던 그 사람이.

신에게 기도했을지도 모릅니다. “시간을 되돌릴 수만 있다면 ...” 자, 그렇다면 당신의 그러한 태도를 두 가지 단어로 설명할 수 있을 것입니다. 부정적 감정! 인생의 서러움과 괴로움을 조금이나마 몰아내고 의미있는 삶을 창조하고 싶은 절대적인 필요성이 있다면 당신의 부정적 감정은 진실로 중요한 것입니다. 뭐라고요? 중요하다고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을 약속했던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당신은 두 가지를 배워야 할 시점입니다. 에이즈에 대한 올바른 인식과 인내심이 그것. 제가 ‘배워야 한다’는 말을 한 것에 대해 의아하게 생각할 지도 모릅니다. ‘아니, 배우는 건 학교에서 하는 게 아닌가!’

그건 잘못 알고 있는 겁니다. 배우는 것과 가르치는 것은 동전의 양면과 같이 같은 말입니다. 당신은 배우면서 가르치기도 하는 것입니다. 1차적으로는 자신에게! 이 사회에서는 교육의 진정한 의미인 배우고 가르치는 일을 이분화시킵니다. 그래서 학생은 무조건 배우고 외워야 하며, 선생은 가르치고 통제해야 합니다.

그것은 교육을 제도적으로 만들고, 교육의 가치를 산업적으로 부가한 것입니다. 학생은 준비된 노동자인 것입니다. 어쨌든, 당신이 학교를 별로 안 좋아했듯이, 머리 속에 바위처럼 박혀 있는 교육에 대한 상식도 이제는 깰 필요가 있습니다. 인생의 지식을 배우십시오. 체험으로서 몸과 마음이 결속된 지식이야말로 지혜입니다.

저는 몸과 마음의 지식을 배우라고 권유한 것입니다. 물론, 배움의 와중에 각성된 의식이 여기저기 개입해야 합니다. 과학적 논리에 익숙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제기된 주장에 출처가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당신이 실존하는 존재라면 집 주소가 있는 것처럼, 이론에는 반드시 집 주소 즉, 출처가 있어야 합니다. 지금 서 있는 이 곳은 과학적 출처로 아름답게 장식한 헨델과 그레텔의 집 주소입니다.

동화를 다시 쓴다면, 헨델과 그레텔은 에이즈가 없다는 책을 읽고 있을 것입니다. 그리곤 이렇게 말하겠지요. “할머니(에이즈 공포증자)는 노쇠해서 돌아가신 게 아니라, 늑대(에이즈 이데올로기)에게 잡아 먹힌 거야.”라고.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을 약속했던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대담해지십시오.

사람들은 하루 세 끼를 먹습니다. 만약에 사람이 먹는 밥의 양만큼을 소나 돼지가 먹는다면 그 동물들은 비만에 걸려 몸을 움직이지 못할 것입니다. 그럼에도 사람이 항상 적정 몸무게를 유지할 수 있는 것은 식사에서 얻은 에너지를 사용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에너지는 육체적 에너지가 아니라 정신적 에너지입니다. 에이즈 공포증에 시달리는 당신에게 소모되는 에너지는 절망적인 갈망, 갈등 때문에 생긴 걱정 덩어리에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구를 걸어다닌 사람 중 걱정이나 불안을 했기 때문에 이미 벌어져 있는 상황을 헤쳐나갔던 사람은 단 한 명도 없습니다. 걱정은 도움이 되기는 커녕 심각한 해를 입히기 마련입니다. 달리 말해, 걱정과 불안은 미래의 방향을 바꾸지 못합니다. 게다가 그 걱정과 불안, 이를테면 극단적인 신경과민과 자신감 결여를 불러 일으킨 것이 에이즈 공포증이라는 위험한 망상이라면!!!

몸과 마음은 하나입니다. 걱정은 몸을 해칩니다. 아주 심각하게! 의학적으로 설명하자면, 중추신경 계통과 혈액 공급 기관의 기능을 저하시킵니다. 위장병이 생기고, 얼굴이 벌겋게 되기도 하며, 여드름이 생기면서 혀에 백태가 끼는 현상 또는 심장이 쿵당쿵당거리는 건 모두 스트레스라고 통칭되는 다양한 걱정거리에서 비롯되는 것입니다. 제 말이 틀리다고 생각들면, 비교적 현명한 의사에게 물어보십시오. 그의 처방전은 이겁니다. ‘웃으세요.’ 우리 모임이 존재하는 건 당신에게 웃음을 주기 위해서입니다.

마지막에 웃는 사람이 진정한 승자입니다. 우리 모임을 거쳐간 에이즈 공포증자들이 한 명도 빼놓지 않고 웃었듯이, 당신도 그 웃음의 주인공이 될 때가 멀지 않았습니다. 공포에서 벗어난 사람들의 웃음에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대담함이 그것. 대담함을 성취하는 최상의 기준은 명확한 이론에 있습니다. 우리가 [에이즈는 없다]를 출간한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기준을 제시하기 위해!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을 약속했던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대담해지십시오.
껍데기를 벗고 축복을 받을 사람은 당신입니다.

억압과 고통을 벗고 새 생명으로 움돋아나는 형상을 노래한 시인이 있습니다. 그가 신동엽 시인이고, 시인은 “껍데기는 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우리의 껍데기는 과연 무엇일까요? 제가 생각할 때 우리의 가장 큰 껍데기는 자기 내부의 이기적인 속성입니다. 가끔 우리는 사랑스러운 반응과 자신에 대한 탐욕을 혼동합니다. 그래서 만족을 얻고자 했을 때 허무한 것입니다. 하지만 진정 사랑스러운 반응은 성취감을 줍니다.

당신에게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에, 에이즈 공포증을 두려워한다면 이제는 사랑의 표현을 할 줄 알아야 합니다. 그것은 자기 안의 이기적인 속성을 버리고 창조력을 꺼집어내는 것입니다. 거듭 강조하지만 우리 모임은 당신의 창조력을 발휘할 수 있는 각종 도구가 가득 차 있습니다. 글을 읽고 쓰고, 저를 만나서 대화를 나누거나 다른 분의 고통을 상담하거나 등등.

우정, 가족관계, 섹스, 연애 등 어느 곳에서나 이마를 훔치며 최고의 성취감을 얻고자 한다면 지금 당장 시작하십시오. 우리에게는 선택의 기회가 있으며, 의지를 사용해서 스스로 원하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깨달아야합니다. 당신이 에이즈에 관해 가진 두려움은 에이즈에 대한 의혹이기도 했음을. 그러니 의혹을 푸시고 터트리십시오. 명쾌하게! 확실하게! 당신이 원한다면 우리는 거의 완벽하게 도움을 줄 것입니다.

에이즈가 밀려난 뒤에는 사랑의 숲이 밀려 닥칠 것입니다. 밤새도록 갈기갈기 찢겨진 가슴 속에서 여유있고 고요한 사랑의 실체를 발견할 수 있습니다. 희한하겠지만 원래 이런 게 인생입니다. 이래야 살 맛도 나는 법이고요.

그건 사랑하는 사람이 있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사랑하는 사람.
함께 미래를 계획하며 행복을 약속했던 그 사람이 행복하기를 바란다면.
대담해지십시오.
껍데기를 벗고 축복을 받을 사람은 당신입니다.
다시 또 다시 열심히 살아보십시오.
사랑하는 사람과 가까워지는 방법은 웃음밖에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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